금리인상 강행과 하반기 인하 가능성 일축에 재무장관의 일구이언으로 얼어붙었던 뉴욕증시가 하루 만에 반등의 안간힘을 쓴 하루였다. 증시의 핵심 논제는 이제 금리라는 테제에서 벗어나 은행 시스템과 신용신뢰를 어떻게 되살리느냐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정치적 난제를 극복하고 시스템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내느냐에 따라 상반기 투심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23일(현지시간) 다우존스 지수(DJIA)는 전일보다 75.14포인트(0.23%) 상승한 32,105.25을 기록했다. S&P 500 지수는 0.29%(11.75포인트) 오른 3948.72로 마무리됐다. 나스닥 지수는 1.01%(117.44포인트) 상승한 11,787.4에 장을 마쳤다.
지방은행 주식들은 오늘도 하락세를 보였다. 지방은행주를 모아놓은 상장주가지수펀드(ETF)인 SPDR S&P Regional Banking ETF(KRE)는 2.5% 이상 빠졌다. 정부나 민간 차원의 대형 구조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옐런의 재번복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의 상원 금융위 청문회 에 출석해 SVB 붕괴 사태와 관련,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건재하다며 예금을 필요로 할 때 인출 가능하다는 것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고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어제와 또 다른 말로 증시에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옐런 장관은 지난 22일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발 후퇴해 증시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공화당 의원들이 납세자 혈세로 부유한 예금자들을 왜 도와주냐고 비판하자 얼버무린 것이다.
하지만 목요일인 오늘 옐런은 다시 말을 뒤집었다. 하원 세출예산위원회에서 그는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된 연방비상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게 정당하다면 다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해 추가 지원의사를 나타냈다. 세계 최대국의 재무장관이라는 자가 오락가락하는 모양새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야당이 공세를 펼 때는 국회 논의와 승인이 필요하다고 의원들을 어르고 달래야 하지만 그로 인해 증시가 크게 흔들리면 미국 은행시스템 보호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로 확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책 책임자들의 언어도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이 집권한 현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년에 재선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은행 파산을 이대로 둘 경우 재집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행정부나 중앙은행 역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초법적 월권도 서슴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다. 반대로 정권을 탈환하려는 공화당은 현 정부 아래 경제가 살아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방은행 위기 심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사진= 박준식 기자지방은행들은 오늘도 하락세를 보였다. 퍼스트리퍼블릭은 6% 하락했고, 팩웨스트 뱅코프는 8.55% 떨어졌다. 하지만 일부는 회생의 움직임을 보였다. 퍼스트호라이즌은 1.28% 상승했고, 트라이엄프 파이낸셜도 강보합세를 유지했다. 파퓰러도 1.19% 올랐다.
커먼웰스파이낸셜의 브래드 맥밀런은 "월가의 논제가 연준의 금리인상에서 은행 위기로 초점을 옮겼다"며 "지금 시장이 걱정하는 것은 금융위기"라고 지적했다.
실제 CME그룹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5월 FOMC(공개시장위원회)에서 25bp 금리 인상이 이뤄질 확률은 47%로 과반에 미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6월 회의에서 현재 4.75%-5% 목표 범위에 머물렀다가 올해 말까지 4%-4.25% 범위로 떨어질 확률이 약 67%로 나타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올해 금리인하는 없다고 못박았지만 은행 위기가 거듭되고 경착륙이 시작되면 제 아무리 연준이라고 하더라도 피봇(금리인하 반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다.
이날 발표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총 19만1000건으로 추정치인 19만8000건보다 적어 아직까지도 노동시장이 타이트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긴축정책 효과가 후행적일 수 있는 노동시장 데이터에 대해서는 이제 관심이 줄었다. 대신 은행의 신용경색 효과가 얼마나 더 빨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냐가 투심을 좌우하고 있다.
아랑곳 않는 애플과 기술주 랠리
애플의 신작인 '아이폰14' 시리즈 14, 14 플러스, 14 Pro, 14 Pro Max가 공식 출시된 7일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에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애플은 오늘도 0.7% 상승해 오름세를 이어갔다. 3월 한 달 간 애플은 145달러 수준에서 12% 이상 올라 오늘 장중 160달러를 넘어섰고, 159달러를 목전에 두고 거래를 마감했다. 종가 기준 6개월 내 최고치다. 애플 시가총액은 2조5100억 달러로, 2위 마이크로소프트(2조600억 달러)보다 21% 이상 높다. 나스닥 기술주 가운데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19%)이나 Amazon(16%), Microsoft(15%)보다도 높다. 다른 기술주들도 은행 위기의 반사이익을 얻어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했지만 애플은 그 중에서도 안정적인 주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넷플릭스는 캐나다에서 매출이 개선됐다는 이피데이타 보고서에 따라 주가가 7.8% 올랐다. 메타와 스냅도 틱톡 제한의 반사이익 기대로 3% 안팎 상승이 이어졌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이 흥하면서 영화관 사업은 지고 있다. 이날 씨티는 AMC 주가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매도등급과 주당 1.6달러 목표가를 제시했다. 현 주가가 4.47달러임을 고려하면 한국에선 보기 힘든 사실상 숏셀링 가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