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R(경기침체·Recession)의 공포가 휩쓸고 지나간 국내 증시에서 유틸리티 등 경기 방어주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이 늘었다. 기존 주도주로 군림했던 반도체·자동차 중심 포트폴리오가 뒤집힌 것이다. 미국 R의 공포가 약화했지만 거시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은 결과로 풀이됐다.
2일 대신증권과 퀀트와이즈에 따르면 코스피에서 지난달 30일 종가 기준 유틸리티업종이 한달새 7.8%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전업종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뒤를 이어 △건강관리(5.5%) △증권(5.3%) △미디어·교육(5.0%) △소매(4.5%)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하락률 1위 업종은 반도체로 8.3% 떨어졌다. 이 밖에 하락률이 높은 업종은 △화장품·의류(-7.1%) △조선(-5.6%) △철강(-5.5%) △건설·건축(-5.1%) 순이었다. 코스피지수는 2.3% 떨어졌다. 수출 중심의 주도주가 약세를 보이는 동안 비주도주들이 순환매 흐름을 타고 선방한 것으로 풀이됐다. 코스피지수는 장초반 상승 출발했지만 이날 하락 반전한 뒤 보합권에 들어가는 등 엎치락 뒤치락하는 장세가 펼쳐졌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0.25% 오른 2681.00에 마감했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상승 출발한 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49포인트(0.35%) 오른 2683.80에, 코스닥지수는 2.19포인트(0.29%) 오른 769.85에 장을 시작했다. 2024.09.02. scchoo@newsis.com /사진=추상철대신증권은 "반도체, 자동차 등 주도주는 부진하며 유틸리티, 건강관리 등 방어주의 수익률이 상위를 차지했다"며 "실제 경제 국면이 이미 더딘 성장(slow growh)으로 전환되며 (수익률 변화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방어적 성격 섹터인 △통신 △건강관리 △유틸리티 △필수재 △금융 비중을 확대하고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높이라고 권고했다.
미국 R의 공포에 직면해 매도에 나선 핵심 투자주체는 외국인들이었다. 지난달은 외국인 중심의 매도 폭탄을 개인이 받아내는 구도가 전개됐다. 외국인은 지난달 2조8000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이 2조8000억원을 순매수한 것이다. 기관은 3000억원 순매도로 집계됐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 엔비디아 실적 등 굵직한 이벤트를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증시는 여전히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하는 중"이라며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특히 미국 노동시장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증권가는 이달 미국에서 예정된 고용 지표 등을 통해 R의 공포가 재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8월 고용지표와 ISM(공급자관리협회)의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 발표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색깔이 '인플레이션 민감 장세'에서 '경기 펀더멘털민감 장세'로 바뀌었다"며 "(미국 증시에서) AI(인공지능), 반도체주들의 주가는 회복력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전히 AI 산업의 수익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잔존해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다만 미국 R의 공포가 주가에 미칠 부정적 파급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 연구원은 "8월 말 잭슨홀 미팅을 통해 침체 내러티브 확산이 제어된 측면이 있다"며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고용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실업률 상승을 이끌었다고 진단했으며, 경기 소프트랜딩을 위한 정책 대응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